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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민일보 기획연재] 문화둘레길 화성소나타Ⅱ…2부 華城巡幸 열다섯 마당 이야기…열 마당 ‘화산에 흐르는 눈물’

기사승인 2017.07.17  10: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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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주.

[경기도민일보 기획연재] 문화둘레길 화성소나타Ⅱ…2부 華城巡幸 열다섯 마당 이야기…열 마당 ‘화산에 흐르는 눈물’

화산에 흐르는 눈물

행궁을 관람하는 동안 뒤주를 보았다. 어린 시절 마루 구석에 놓여있던 뒤주가 생각난다. 쌀이 떨어질 쯤이면 말 그대로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난다. 베이비붐 세대면 겪었을 터이다. 때로는 아픈 기억이기도 하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냉전이 시작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정조는 11살 어린 나이! 뒤주 속에서 절규하는 아비의 목소리를 들었다. 한(恨)! 한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즉위 후 “나는 사도세자의 자식이다”라고 천명함은 그에 대한 답이 아닐까 싶다. 수은묘에서 영우원으로 격을 올리고 다시 배봉산에서 길지 현륭원으로 천장(遷葬)하여 능(陵)의 품새로 병풍석까지 조성하지 않았을까. 능 주변 산세도 당초 풍수지리상으로 화심(花心)형이던 것을 반룡롱주(盤龍弄珠)혈로 바꾸기 위해 지세를 조성하고 방대한 조림을 한 것이리라. 더구나 인근의 사찰을 용주사로 명명하고 효의 원찰로 삼은 것도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었으리라. 6ㆍ25동란 후 고향을 잃은 분들을 실향민이라고 한다. 그들을 위무하는 동산이 망향의 동산이며 노래가 망향가요 명절이면 망배단을 설치하여 한을 달랜다. 제왕이지 않은가! 슬픔을 불후의 대역사로 승화시켰으리라. 한을 다스려야 위대해지나보다. 故 정주영 회장은 망향의 한을 ‘소떼 방북의 퍼포먼스’로, 충무공 이순신은 온갖 고초를 ‘명량대첩’으로, 다산은 유배의 고독을 ‘목민심서’ 저술로, 징기스칸은 ‘세계정복’으로, 사마천은 ‘사기’ 편찬으로 승화시켜 그 시대에 제 모습 이미지를 남겼다. 정조가 폭군이 아닌 성군으로 자리함은 감성이 풍요로운 시인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를 읽으면 가슴이 따뜻하다. 시인은 가(家)를 쓰지 않고 인(人)자를 써 詩人이라고 한다. 
눈물은 뜨거운 詩다. 
 
[글 양천 우호태 / 아이콘커뮤니케이션 제공]

경기도민일보

<저작권자 © 경기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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