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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민일보 기획연재] 문화둘레길 화성소나타Ⅲ…1부 해안기행 열두 마당 이야기…한 마당 ‘준마는 달리고 싶다-프라이드’

기사승인 2017.07.27  12: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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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프라이드.

[경기도민일보 기획연재] 문화둘레길 화성소나타Ⅲ…1부 해안기행 열두 마당 이야기…한 마당 ‘준마는 달리고 싶다-프라이드’

프라이드

프라이드! 
글로벌 기업 기아자동차㈜의 힘찬 동력이 느껴지는구나. 
어찌 기아자동차㈜가 화성만의 프라이드겠니! 자동차 산업합리화 정책으로 발이 묶였던 승용차 시장에 기아자동차㈜가 출시한 첫 모델이 ‘프라이드’란다. 정신적 에너지랄까?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의 삶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도 바로 그 ‘프라이드’란다. 인간은 누구나 그런 에너지를 내면에 담고 있어 그 힘으로 살아가기도 하지. 그로 인해 진화되어간다고나 할까. 때론 사회적 공명을 일구어 내기도 해. 
바로 긍정의 에너지란다. 


그런 면에서 기아자동차㈜가 현대자동차㈜에 합병되기 전, 창업주 김철호 회장의 열정을 그린 일대기 ‘수레바퀴 한평생’은 아직도 내 가슴에 긴 여운이 있단다. 화성공장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바로 눈에 보이는 거대한 조형물, 두 바퀴가 바로 그 에너지를 대변해 주는 듯하다. ‘수레바퀴’라는 이미지가 마치 구도자의 길을 형상화시킨 듯하지. 쉼 없이 욕망을 추구해가는 인간의 지표랄까? 디지털 시대에 진부한 표현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향하는 가치 추구에 대한 원천적 집념으로 해석한다면 외경심마저 들더구나. ‘어디로 가는 것인가?’ 나를 향한 끝없는 자문이요,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화두를 풀어가는 실마리일 듯싶다. 
인연은 매우 소중한 자산이란다. 
잘 알겠지만 혈연, 지연, 학연은 누구에게나 기본이야. 군대연은 남자라면 의례 맺는 인간관계란다. 직업연과 취미연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니만큼 더욱 소중하지 않겠니? 나에게는 기아자동차㈜는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곳이란다. IMF를 맞아 회사를 떠나기까지 아버지가 12년간 기아자동차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었어. 젊은 날에 푸른 꿈을 키워가던 곳이었지.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 가정을 꾸리고 너희들을 키울 수 있었던 경제적 에너지 공급처였다. 군을 제대한 후, 80년대 중반에 입사를 했던 그 당시도 취업을 하기가 쉽지 않았어.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근무했단다. 회사 업무를 통하여 학습되었던 해외 마케팅, 국내 마케팅, 복지업무, 지역관리 경험이 큰 자산이 되더구나. 그 고마움으로 아버지가 자동차를 구매할 때 기아동차를 고집하는 이유가 되었단다. 

첫 마당에 새삼스레 기아동차를 언급하는 이유는 청년기에 삶의 보람이요 나침반이 되어주었기 때문이야. 신입사원으로 연수를 받았던 장소인 안양 매플하우스와 여의도 본사, 화성공장, 병점영업소의 근무처에서 아침이면 힘차게 합창하던 사가(社歌))가 생각난다. “우리는 이 나라의 산업의 역군, 힘차게 전진하는 보람찬 대열…” 노래를 부르면 애사심을 갖게 되고 자동차 산업의 역군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곤 하였어. 회사 유니폼에 싱싱한 젊음이 솟아올랐다고나 할까. 사가 제창은 산업화 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을 거야. 지금도 매년 송년 모임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기들이 모여 그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단다.  
지금은 화성공장이 웅장한 면모를 지녔지만 90년대 초만 해도 바닷바람을 맞서며 건물들이 한창 건설 중이었단다. 생산되는 승용차 모델도 프라이드 하나로 단출했어. 꼬리가 잘린 듯한 프라이드의 뒷모양도 세상 사람들에게는 좀 어색했지. 생산은 기아자동차㈜에서, 기술 제공은 일본 마쯔다㈜, 판매는 미국 포드자동차㈜가 맡았는데 미국 시장에서는 “페스티바”로 불렸단다. 수출부서에서 근무한 탓에 애정이 좀 깊었지. 멋진 이름이었어. 이따금 자동차 이름이 무언가를 연상하게 하는 것 같아. 조랑말 같은 모닝, 스포티한 스포티지, 물 찬 제비 세피아, 등나무 카렌스, 시골아저씨 캐피탈, 파이터 콩코드, 중후한 포텐샤, 럭셔리한 오피러스, 스마트한 K시리즈… 어때, 그런 것 같지 않니? 그런 수많은 모델이 국내는 물론 해외를 누비는 눈부신 성장을 했더구나. 며칠 전, 신문기사를 보니 1975년도에 브리사 승용차를 첫 수출한 이래 40년간 1500만대 수출 위업을 6월 중에 달성한다는구나. 입사한 해를 기준하면 벌써 30년이 흘렀다. TV ‘생활의 달인’ 프로그램을 보니 사람도 30년이 흘러야 깊이를 갖더구나. 
한 세대가 흘러야 기업도 사람도 또렷한 나이테를 갖나보다. 
지금, 아주 세련된 모습으로 단장된 화성공장 정문에 서있다. 30년 전을 회상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워. 정문에 다다르는 입구의 갈래 길에 바윗돌 이정표가 서있어. 왼편으로는 안중 포승을 거쳐 평택항으로 가는 길이며, 오른쪽으로는 공장 담 벽과 이웃한 해변도로로 이어져 석천항과 매향리에 다다르지. 세월이 흐르니 옛길처럼 사람도 그리움을 낳는구나. 누가 봐도 점퍼차림의 현장맨이시던 맏형 같은 거구의 문OO 공장장, 논리가 명쾌하신 유OO 부장, 상황판단이 정확하신 임OO 과장, 유머감각이 뛰어난 이OO 대리, 깊은 물처럼 소리가 없는 손00 대리, 분위기 메이커인 윤OO 대리…. 본사에서 공장으로 인사 발령되어 대리 직급으로 복지업무를 수행하며 모셨던 상사와 선배, 동료들이다. 서투른 공장생활에 적응을 하는데 도움을 준 분들이라 잊혀지지 않는구나. 
내면의 어울림으로 맺은 인간관계는 좋은 추억이 된단다. 
1990년도이니 25년이나 흘렀어. 특히 점심시간에 끼어 앉아 프라이드를 타고 후문의 자장면 집으로 달려가서 정담을 나누던 일들은 본사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어. 마치 시골의 넉넉한 인심과 빈틈없는 도회지의 모습으로 비유되는가 싶다. 이곳을 지날 때면 옛정이 포도송이처럼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해안도로를 달리다보니 무언가에 이끌려가듯 눈길이 수평선을 향하네. 철조망이 쳐진 해안가의 풍경이 마치 다가갈 수 없는 지난 세월의 가림막 같아. 창문을 여니 갯바람에 실린 바다내음이 그리움처럼 밀려와 괜히 숙연해지기도 해. 어렵게 구한 기아자동차㈜ 사가를 다시 들으니 마치 30년 전 회사 유니폼을 입은 청년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너희들도 사회인이 되었으니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많을 거야. 조직의 일원으로서 합창을 할 때는 어깨를 펴고 힘차게 부르렴. 노래도 심신을 단련시키는 운동이야. 
몸 울림으로 시작하는 하루는 활력이 솟는단다. 
배에 힘을 주어야 제 맛이 난다. ‘프라이드’도 배의 힘이란다. 덩샤오핑, 나폴레옹…. 모두 작은 체구이지만 뱃심에 담겨있는 끝없는 자양분으로 세상을 끌어갔다고 하잖니. 

 

[글 양천 우호태 / 아이콘커뮤니케이션 제공]

경기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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